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장 사건 (문단 편집) === 이후 === 안티월장이 예정됐던 오프라인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고 자진 해체한 후 월장 사건은 점차 진정되었다. 이후 월장은 2003년 8월까지 프리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월장』 8호까지 업데이트하였다. 월장 사건 이후 영남권의 학내 여성운동은 정체 또는 하락세를 보였고 부산대의 여성주의 운동은 거의 붕괴되었으며 부산대 총여학생회는 일찌감치 없어졌다. 2010년대에 총여가 사라지는 타 지역보다 10여년 더 빨랐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페미니즘의 동향은 [[2003년]] 무렵까지 일명 100인위원회[* 대학 운동권이 극단적인 [[남초]] 문화와 상명하복, 독재적 의사결정, 군대식 조직운영, 운동권 내에 만연한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 등등으로 문제가 되자 결성되었는데 운동권은 이들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투쟁의 적", "프락치의 음모", "배후세력의 이간질"(…) 등을 제기하면서 반발했다. 이는 훗날 2008년이나 2017년 촛불집회 등지에서 "우리는 운동의 꽃이 아니다" 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던 여성 참가자들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등의 활동으로 기존 [[운동권]]과 여성운동의 대립각을 세운 것 이후에는 사실상 침묵기에 접어들었다. 많은 논자들이 [[2005년]]에서 [[2015년]]에 이르는 10년간의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페미니즘이 사회적 담론에서 수면 아래에 잠겨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가 온라인 상의 남녀 간 갈등이 다시 본격화된 것이 [[2015년]] [[5월 12일]]에 발발한 [[여성시대 고발 대란]] 및 같은 해 7월의 [[메르스 갤러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터져나온 것이 이듬해의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며 주류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젠더분쟁을 정점화시킨 것이 2년 후의 [[2018년 혜화역 시위]]였으니 거진 10년 주기로 다시 돌아온 이슈인 셈. 이 시기 동안 여성계가 왜 조용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논쟁적인 사안이지만 확실한 것은 월장 사건을 위시한 [[2000년대]] 초엽의 젠더 갈등과 [[2010년대]] 후반의 젠더 갈등에는 상당한 연속선이 있다고 할 만큼 유사한 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논자들은 당시의 문제의식이 해결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회 풍토 속에서 잠시 억눌려 있다가 세대가 바뀜에 따라서 2010년대에 재점화되었다고 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